묵직한 마음이 분열되는 기분이 난다.
마음이 머리와 연결되어 있는지, 신체의 신경계와 연결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마음은 다른 생각을 집어넣는다고 해서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얼마간 안고서 보듬어준다면 언제부터는 생각과 함께 자유로워질 것이다. 피해갈 수 없는, 하지만 분명 지날 수 있는 좁고 가는 구멍일 뿐이다.

나는 아프다. 그러나 아픔을 다른 것들로써 가리지는 않겠다.

흥분이 되어서, 심장이 뛰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누워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얼마만큼 변해야 하느냐고?
심장이 없다고 할 만큼 변하면 된다.
머리가 없다고 할 만큼 잊어버리면 된다.
두려운 게 없다고 할 만큼 강해지면 된다.

너로 인해서 달라지건 그렇지 않건, 가 보고서 이야기하겠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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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대하여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었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 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가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복효근)

사랑의 말

I.
사랑은
말 하지 않는 말
아침에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 뒷방 병풍 너메
숨어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빛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
생각만이 깊고
말 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II.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 버리고
그 별이 시키는대로
세상 양끝이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번 쏟아 붓고도
진홍인 노을

사랑은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김남조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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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반에 눈을 떠서 동이 터 오는 것을 바라보며 이 시간이 되기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결론은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면 안되겠다고.

서울 집에서 두바이까지의 거리, 두바이에서 이곳 조벅까지의 거리를 생각하고
이 전에 다녀온 뉴욕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비행기와 이 직업이 주는 환경이 지구에서 태양까지 걸어가라는 말도 안되는 임무를 완수하는 만큼이나
큰 장소의 이동을 내게 주고 있는지 새삼, 하지만 충격적으로 깨닫게 된다.
반면 나는 호텔방에 누워-어느 나라에서나 크게 다를 것 없는 호텔방에 누워
하얀 벽과 창문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흘려보내고 있나.

겸손함도 호기심도 최소한의 기록마저도 잊고 잃어버린 지금으로서는
이 직업이 오히려 나를 오만하게 하는 최악의 결과를 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잠시 있다 떠난다는 이유로 다시 들를거라는 안이한 생각이 부른 내 태도로서 말이다.